승부 (2025) – 단순한 바둑 이야기를 넘어선 감정의 드라마
처음에 ‘바둑’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별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바둑이 영화 소재로 그렇게 흥미로울까? 조용히 앉아서 흑백 돌 놓는 장면이 얼마나 긴장감 있게 그려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죠. 그런데 승부는 그런 편견을 완전히 깨버렸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라, 야망과 자존심, 그리고 스승이 제자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순간의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https://youtu.be/J8qqMLZPPTo?si=12MSIHYVZZ2Q69Te
바둑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
승부는 실제 인물인 조훈현과 이창호, 두 바둑 전설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훈현이 어린 이창호의 가능성을 보고 제자로 받아들이며 이야기가 시작되죠. 처음엔 정말 훈훈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분위기가 바뀝니다.
이창호는 점점 조용하고 냉정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그 실력은 스승마저 뛰어넘기 시작하죠. 둘 사이에는 서서히, 조용하게 거리감이 생깁니다. 화를 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아요. 그냥 말수가 줄어들고, 눈빛이 변하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이 줄어들어요. 그게 더 아프게 다가오더군요.
말보다는 눈빛으로 전하는 연기
조훈현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는 정말 압도적이에요. 대사를 많이 하지 않아도, 눈빛 하나, 숨을 고르는 타이밍 하나에서 감정이 다 느껴집니다. 제자에게 밀리는 현실을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요.
유아인이 연기한 이창호 역시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인물인데도, 그 내면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훈련된 모습 속에서도, 어느 순간 문득 스치는 감정들이 너무 진짜 같았어요.
둘이 함께 나오는 장면은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말은 없지만, 그 공기 속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죠.
우여곡절 끝에 스크린으로
사실 이 영화, 원래는 훨씬 일찍 나올 예정이었어요. 촬영은 벌써 몇 년 전에 끝났고, 처음엔 넷플릭스 공개도 논의됐었죠. 그런데 유아인 배우의 사생활 문제로 인해 개봉이 미뤄졌고, 한동안 소식이 없었어요.
그래서 더 놀라웠던 건, 2025년에 극장 개봉 후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했다는 거예요. 대대적인 마케팅도 없었고, 자극적인 소재도 아니었는데 200만 명 넘게 극장에서 봤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죠.
오래 남는 이야기
승부의 가장 큰 장점은 ‘조용한 감정’입니다. 큰 소리로 울부짖거나,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은 없어요. 하지만 그 침묵 속에 담긴 감정은 아주 오래 남습니다. 누군가를 존경하면서도, 결국은 넘어설 수밖에 없는 관계. 서로를 사랑하지만, 더 이상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슬픔. 그 모든 걸 아주 차분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이에요.
바둑을 전혀 몰라도 괜찮아요. 이건 바둑에 대한 영화라기보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아주 현실적인 감정의 흐름을 담은 영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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