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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댐즐(2024): 왕관을 약속받고, 어둠 속에 버려지다

by M씨 2025. 5. 8.

댐즐 (2024): 왕관을 약속받고, 어둠 속에 버려지다

화려한 결혼식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곧 배신과 생존의 악몽으로 바뀐다.
넷플릭스의 댐즐은 동화 같은 외양 속에 날 선 진실을 숨기고 있으며, 주인공은 그 거짓을 하나씩 파헤쳐 나간다.

https://tv.kakao.com/v/444610563

평화의 제안이었던가, 함정이었던가

엘로디는 사랑을 꿈꾸던 사람이 아니다. 혹독한 겨울이 일상이던 북쪽 땅에서 자란 그녀는, 환상보다 현실을 먼저 배우며 컸다. 그래서 아우레아 왕국에서 혼인을 제안해왔을 때, 그것은 감정보다 정치적 판단의 문제였다. 그녀는 개인이 아닌 가문의 미래를 생각했고, 그렇게 왕자의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 발을 디딘 아우레아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궁전은 위엄을 품었고, 왕실 사람들은 예의 바르며 품위 있었다. 여왕은 절제된 품격을 지녔고, 왕자는 말쑥하고 친절했다.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고, 모두가 축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따뜻한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남겨진 건 단 한 사람뿐이었다

누구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전통이라고 했을 뿐. 결혼식 직후, 엘로디는 사람 없는 산으로 조용히 이끌려간다. 그리고 거대한 동굴 앞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그제야 깨닫는다. 이 혼인은 사랑이 아니라 제물이었다는 것을.

왕국은 오래전부터 한 괴물과 거래를 맺어왔다. 대가로 살아남기 위해, 세대마다 귀한 여인을 그 동굴에 바쳐온 것이다. 이번엔 엘로디가 그 차례였다.

아무도 남지 않았고, 도망칠 길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포 속에서 걸음을 떼다

그 동굴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었다. 이름 없는 이들의 흔적이 바닥과 벽에 흩어져 있었다. 부서진 도구, 긁힌 글자,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 모두 그녀처럼 '선택된' 이들이었고, 모두 사라진 사람들이었다.

엘로디는 점점 그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두려움은 어느 순간, 생존 본능으로 변한다. 그녀는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배운다. 숨는 법, 움직이는 법, 생각하는 법. 그 안에서 그녀는 알게 된다. 이건 괴물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이 왕국 전체가 침묵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이건 단순한 탈출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겨질 세계를 바꾸는 여정이다.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화면에 담긴 힘

밀리 바비 브라운은 이 영화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켜낸다. 엘로디라는 인물은 처음엔 조용하지만, 점점 내면의 힘을 드러낸다. 그녀의 변화는 눈에 띄게 급격하지 않지만, 그만큼 믿음직스럽다. 관객은 그녀의 공포를 느끼고, 곧 그녀의 결단에 설득당한다.

로빈 라이트는 냉철한 여왕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남기고, 닉 로빈슨은 침묵 속에 복잡한 내면을 담은 왕자를 연기한다. 안젤라 바셋, 브룩 카터, 레이 윈스턴도 모두 각자의 역할을 진중하게 채워간다.

영상미 역시 뛰어나다. 포르투갈의 거친 풍광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드래곤은 보이지 않기에 더욱 위협적이다. 음악은 적절히 침묵을 살려내며, 감정선을 더 깊이 끌어올린다.

 

마무리하며

이 이야기는 탑 안의 공주가 구조받기를 기다리는 서사가 아니다.
조용히 사라지라 명령받은 한 여성이, 그 운명을 거부하고 싸우는 이야기다.

댐즐은 오래된 서사를 새롭게 질문한다.
우리는 왜 늘 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까.
그리고 이제,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다.

"그녀에게 준 건 드레스와 왕관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무기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