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 그녀는 킬러였고, 마지막 선택을 해야 했다
영화 파과는 보기 드문 작품이에요. 시끄럽거나 자극적인 건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더 깊게 스며드는 영화랄까요. 처음엔 뭔가 특별할까 싶었는데,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머릿속이 멍하더라고요. 노화, 외로움, 평생 짊어진 선택의 무게 같은 것들이 천천히 마음에 내려앉아요.
https://youtu.be/zNVsIQ7lvCQ?si=O0iyB70mTP04ivXx
방아쇠를 쥔 여자
이야기의 중심에는 '조각'이라는 여성이 있어요. 말수가 적고, 60대에 접어든 킬러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평범하지가 않아요. 말이 없는데도, 눈빛 하나로 다 말하는 사람이죠. 이혜영 배우가 조각을 연기하는데, 그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그냥 ‘삶’처럼 느껴져요.
조각은 40년 넘게 살인을 해온 사람이에요. 이제는 지쳐버린 육신과 정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나 혼자 걷는 장면에서도 그 피로감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멋있거나 화려한 킬러가 아니라, 현실을 받아드리고 그 곳에 뿌리내린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젊은 킬러가 던지는 파문
조각 앞에 등장하는 인물이 젊은 ‘투우’입니다. 젊고 빠르고 자신감 넘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흔들리는 존재예요. 처음엔 단순한 대결 구도처럼 보이지만, 점점 이상하게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이 둘은 단순한 적수가 아니에요. 서로의 과거, 미래, 또는 거울 같은 존재예요.
김성철 배우는 그 복잡한 감정을 꽤 섬세하게 그려내요. 투우가 조각을 바라보는 눈빛엔 단순한 경계심이 아닌, 약간의 두려움도 있어요. '내가 저런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인식이 스며있어요.
총알보다 깊게 박히는 정적
파과는 액션영화라고 하기엔 뭔가 다릅니다. 물론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있지만, 그것보다도 멈춘 장면들이 더 강하게 다가와요. 아무 말 없이 복도에 서 있는 조각을 보는 장면에서 오히려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이 영화는 소리를 줄이고, 화면을 비우고, 인물에게 집중해요. 그래서인지 관객으로서 자연스럽게 그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게 몰입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없던 캐릭터 주인공
킬러를 하기엔 60대는 남녀 어느쪽이라도 적은 나이가 아니죠. 한국 영화에서 60대 여성을 킬러로 중심에 세운 영화, 거의 본 적이 없죠. 하지만 파과는 오히려 킬러가 보내온 시간을 무대에 장치로 세우며 나이를 들어낸 것 같아요. 조각은 나이 먹어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 시간을 버터왔기때문에 오려 더 단단한 인물이죠.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지?’ 같은 질문이 조용히 흘러요. 영화는 그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아요. 그냥 함께 고민해보자는 듯 조용히 머무릅니다.
결말이 없어도 괜찮은 영화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이 영화는 깔끔하게 정리되는 결말을 주지 않아요. 대신 여러 감정을 남기죠. 지금 중년에 이른 나처럼 결말을 모르죠. 그래서 좋았어요. 오래 살았다 해서 해답을 알고 있는건 아니잖아요?
영화가 끝난 후에서 한참 입을 열지 않았어요. 그게 이 영화가 제게 준 여운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영화라는 것은 확실하게 강하게 남았네요.
내 감상 한 줄 평
파과는 단지 나이든 ‘여자 킬러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건 정체성과 시간, 그리고 “살아남는 것만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어떤 장면보다, 영화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 느낌이 오래 남아요.
속도감보다는 여운을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는 꼭 보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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